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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생명이 곧 나

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 시민협력분과 위원 

 

식량 문제는 사람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많이 간과되었다. 다른 나라의 기후 변화는 우리 식탁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5월 국제 퍼머컬쳐의 날을 맞아 식량과 토양 문제를 생각해본다. 

 

밥은 숨 쉬는 대지에서 출발한다

 

“밥은 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숨결로 빚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이 밥으로 

땅과 물이 나의 옛 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이 밥으로 

우주와 한 몸이 됩니다. 

그리하여 공양입니다. 

 

온몸 온 마음으로 온 생명을 섬기겠습니다.”

 

수경 스님이 지은 공양송입니다. 사찰에서 밥을 먹는 것을 ‘공양’이라 하고 숟가락을 들기 전에 감사한 마음을 읊는 걸 ‘공양송’이라 합니다. 내 앞에 놓인 밥 한 그릇은 숨 쉬는 대지에서 시작합니다. 흙에 뿌려진 씨앗 한 알이 적절한 물과 햇볕과 바람의 손길을 만나 빚어낸 생명의 선물이 밥이고, 바로 그 밥을 먹는 것은 곧 우주와 한 몸이 되는 일이라 공양송은 일러줍니다. 공양송은 음식이 내 식탁에 오르기까지 여정을 되새겨주니 삼라만상의 조력을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이 고마움을 얼마나 절절히 느끼며 먹고 있는지 생각하니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흙을 밟을 일이라고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보니 흙의 존재를 거의 잊고 지냅니다. 도시화율이 90%가 넘는 대한민국에 사는 대다수 사람의 처지가 이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요. 더구나 상품 사슬로 세계가 엮이면서 먹을거리의 많은 부분을 배로, 비행기로 실어 나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식탁 위에 차려진 온갖 먹을거리를 대주는 곳은 흙이 아니라 마트라는 착각 속에 살게 됩니다. 어떤 먹을거리든 흙과 물과 태양과 바람의 손길 없이 생겨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브랜드가 붙은 공산품으로 인식할 따름입니다.

 

사슬처럼 엮인 전 세계  


 _‘하부브’라 불리는 브라질의 모래폭풍 



작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루 일대에 ‘하부브’라 불리는 모래폭풍이 닥쳤습니다. 길게는 7시간 가까이 계속된 모래폭풍으로 인터넷이 끊기고 정전사태도 불러왔어요. 세계 최대 열대우림인 아마존이 국토의 59%를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이 백여 년만의 가뭄을 겪었거든요. 가뭄의 원인이 한 가지일 수 없지만 아마존 숲을 개발했던 게 큰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어요. 아마존은 하늘을 흐르는 강이라 불릴 정도로 아메리카 전 대륙에 수분을 공급해주는 주요한 곳이거든요. 지평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최대 2킬로미터에 이르는 모래폭풍이 도시를 덮치며 낮을 밤으로 바꾸었습니다. 전체 전력의 70%가량을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브라질이 가뭄으로 발전까지 거의 멈추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브라질 가뭄은 브라질에 한정된 재난이 아닙니다. 

기후로 인해 가장 큰 피해는 예측할 수 없는 이런 기후 시스템이 결국 농사를 망친다는 데 있습니다. 작년 대 가뭄으로 브라질 농업생산량이 20%가량 줄자 세계 식량 가격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세계 대두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작년 가뭄으로 대두 가격이 크게 올랐어요. 이런 상황에다 전 세계 해바라기씨유 최대 수출 국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수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해바라기씨유 부족분을 채우느라 팜유 수출이 늘어나자 세계 최대 팜유 수출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생존에 식량은 필수인데 기후로 인해 식량 생산량은 해마다 널뛰기를 합니다. 식량이 단순한 식량이 아닌 식량 안보, 식량 주권이라는 말로 불리게 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입니다. 식량자급률 45%대인 우리나라는 어떻게 먹을거리는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까요? 한 나라의 위기가 그 나라의 위기로 끝나던 시대가 더 이상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가 온갖 상품 사슬로 엮이면서 브라질에서 나비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몰고 온다는 말을 실감하는 시대입니다. 브라질의 가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 식량 가격, 에너지 가격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토양침식도 생산량에 큰 영향


 _(좌)한 나라의 가뭄은 전 세계 식탁에 영향을 미친다,

(우)경작용 땅이 늘어날수록 가속화되는 토양 침식 



브라질의 모래폭풍이 충격적이었던 건 당장 농업생산량이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토양침식으로 향후 식량 생산에도 큰 타격이 될 거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앞서 공양송에도 나와 있듯이 흙은 밥의 출발입니다. 

영국 랭커스터 대학교 연구진이 중국 장안 대학교, 벨기에 루뱅 가톨릭 대학교 연구진과 공동으로 6개 대륙 38개국의 255개 지역의 토양침식 데이터를 수집해서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는데요. 관습적인 방식으로 경작되는 토양의 90% 이상이 두께가 얇아지고 있고 16%는 수명이 100년 미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농사짓는 땅이 늘어날수록 토양침식은 가속화됩니다. 만약 한해살이, 여러해살이 작물을 고루 심는다면 제각기 다른 뿌리로 흙을 잡고 있느라 토양침식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작물의 뿌리가 내리는 비를 빨아들이면서 땅을 기름지게 합니다. 흙을 기름지게 하는 중요한 또 하나의 요인은 땅속 미생물인데요. 또 하나의 우주라 표현할 정도로 땅속 미생물의 수를 인류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해요. 농약과 살충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땅속 미생물을 사멸시킵니다. 농업생산량 감소 원인을 비단 기후 시스템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퍼머컬쳐, 지속 가능한 삶의 문화 


 _생태철학을 바탕으로 한 퍼머컬쳐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먹을거리를 지속 가능하게 얻으려면 자연과 인간이 본연의 생명력을 복원해가면서 함께 살아갈 때 가능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렇게 흙과 물과 내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태 철학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 퍼머컬쳐입니다. 영원하다는 의미의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 두 낱말을 합해 만든 신조어인데요, 이 말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지속 가능한 농사를 짓고 나아가 자립하는 삶을 사는 문화가 담겨있어요. 그저 씨를 뿌리고 더 많이 수확하려는데 초점이 맞춰진 농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농사지을 공간을 디자인하고 식물, 동물 그리고 무생물까지 모든 생태계와 더불어 지속 가능한 삶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농사를 의미합니다. 5월 첫째 주 일요일은 ‘국제 퍼머컬처의 날’입니다. 

가뜩이나 기후로 농업생산량은 줄어들고 있는데 2050년까지 세계 인구는 10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합니다. 당장 우리의 식량자급률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도시 텃밭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텃밭에서 푸성귀를 수확하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지만 한 뙈기 텃밭이라도 흙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윤을 가져다주는 교환가치로 땅을 보던 우리의 인식에 전환이 필요할 듯합니다. 땅은 수많은 목숨을 낳고 기르는 생명의 어머니라는 인식 말입니다. ‘국제 퍼머컬처의 날’이 있는 5월에 흙의 진정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