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과 정조의 상징으로 옷자락에 고이 숨겼던 장도(粧刀). 이 지나간 유산에 낙죽으로 숨을 불어넣는 이가 있다. 한 명의 선비이자 장인,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낙죽장도장 한상봉.
_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낙죽장도장 한상봉
선비가 만드는 유일한 공예품
낙죽장도(烙竹莊刀)는 대나무로 만든 칼집이나 칼자루에 불에 달군 인두로 글을 새겨 장식한 칼이다. 삼국시대 비수(匕首)에서 유래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 깊은 우리 문화재 중 하나다. 칼이라 하면 응당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낙죽장도만큼은 선비에 의해 전승된 문화다. 구름이나 매화 등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나 글귀를 옮겨 담았기에 한자를 아는 솜씨 좋은 문인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를 계승한 한상봉 선생은 낙죽장도가 호신용 장신구이기도 하지만 서책으로서의 의미가 강한 애장품이라고 말한다.
“불에 달군 인두로 문장을 지져서 휴대하였기에 칼이지만 하나의 책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많게는 수천 자의 활자를 수놓으며 문장이 가진 뜻을 마음에 새겼을 거라 생각합니다. 친한 벗에게도 선물하였다고 하니 분명 학문적 교류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고 봅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열사들에 의해 항일투쟁의 의지가 새겨진 증표로 사용되던 낙죽장도는 한 집안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_낙죽장도/30~33cm/2018
대대로 이어진 문화유산
낙죽장도의 계보는 한상봉 선생의 아버지이자 국가무형문화재 고(故) 한병문 선생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인 한병문 선생은 당시 서당을 운영하던 재종조부 고(故) 한기동 문하에서 글과 함께 낙죽장도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러다 낙죽장도를 찾는 사람이 뜸해지자 부친은 농사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스승의 작품이 일본 박물관에서 발견됐다는 것을 알게 됐고, 수소문 끝에 결국 자신이 마지막 전수자임을 깨닫고 다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를 한상봉 선생이 이어가고 있다.
“전승 공예는 근대산업의 발달로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그렇기에 전통 공예가는 생활이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가장이 한다면 가족 모두가 반대합니다. 헌데 가업이면 생각이 다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하고 눈여겨봤기에 전대 보유자였던 아버지가 작업을 못하게 되자 무작정 전수관에 내려와 가업을 이어받았습니다.”
_고(故) 한병문 선생이 제작한 사인검/1998
인고의 시간을 버텨낸 대나무처럼
대나무는 하나의 장도가 되기까지 자그마치 10여 년의 세월이 걸린다. 대나무를 12월 초부터 입춘까지 한정된 시기에만 채취, 건조로만 7~10년 정도를 보낸다. 이후에 흠결 없는 7마디 이상의 대나무를 절단하고 속을 훑어낸 후 칼집에 낙죽하기까지 또 2~3개월의 시간을 들인다. 낙죽(烙竹)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에 글을 놓는다는 뜻이다. 인두의 열기를 이용, 온몸을 사용해 글과 그림을 새겨 나간다. 이 과정을 수백 수천 번 되풀이한 후 소다리뼈, 소뿔, 자개 등으로 장식하여 낙죽장도를 완성해나간다. 전 공정이 다 수작업이고 곡성에서 나는 대나무만 사용하기에 시일이 많이 걸린다. 이렇듯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것은 참으로 지리하고 어려운 일이다. 지극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야 가능하다.
“저도 가끔씩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소명의식과 작품을 만들 때마다 느껴지는 성취감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가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13세 때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 전통 공예의 길이 벌써 수십 년, 그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은 단연 ‘경인사인검’이다. 호랑이해, 호랑이달, 호랑이날, 호랑이시에 만드는 칼을 ‘사인검’이라 한다. 그 중 백호의 해인 경인년에 제작하는 경인사인검은 60년에 딱 하루만 만들 수 있다.
“제가 2010년 이 검을 완성한 이후로 많은 사람이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이 아닌 국민 모두를 지켜주는 행운의 상징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여러분이 경인사인검을 볼 수 있도록 전수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_경인사인검/1m10cm/2010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보물
선대에 이어 기술과 함께 전수관을 운영 중인 한상봉 선생, 그는 자신의 아들을 수제자로 두며 다음 세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고등학교 방과 후 과정으로 이순신장군 가검(假劍) 만들기를 지도, 전통 예술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현실에 맞게 현대화, 산업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통기술을 접목한 식도를 제작하려고 연구했고 현재 시제품까지 개발했습니다.”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현대적 의미의 낙죽장도를 구상중인 그는 그러면서도 선조들의 정신은 온전히 계승되길 바란다.
“전 세계적으로 칼에 글귀를 새겨 넣는 일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랍인들이 칼에 코란 구절을 넣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낙죽장도처럼 수천 자의 문학작품을 새겨 넣는 일은 전무합니다. 낙죽장도는 우리나라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유산입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죽장도의 존재조차 모르지만 인격 완성을 위해 학문에 정진하던 선비정신이 담긴 이 검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가진 역량을 발휘해서 후대까지 알리는 것이 주어진 과제라 생각합니다.”
낙죽장도를 세계 유일의 문(文)과 무(武)가 결합된 예술이라 말하는 그에게서 마치 조선에서 타임슬립한 선비의 자존심과 지조까지 엿볼 수 있었다. 장인과 선비의 면모를 두루 갖춘 그를 통해 우리의 소중한 전통은 계속될 것이다.
_낙죽장도의 종류
사진 제공_한상봉 낙죽장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