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숙 교수는 ‘나중’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주어진 상황,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식당 ‘계향각’에서 요리를 하고, 방송 촬영까지 해내고 있는 신 교수의 음식과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소통’ 잘하는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23년간 학생들을 지도해온 신계숙 교수는 중국 문화 및 요리, 언어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중국 전문가다. 학생들과 소통을 잘하는 교수로 통하는 그는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소통의 비결이라고 했다.
“수업을 가르친다는 느낌보다는 학생들의 생각을 읽자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약간 방임적인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죠. 학생들이 알고 싶어 하고, 필요로 하는것을 읽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리 실습 메뉴를 정할 때도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꼭 고기가 들어간 음식으로 선정해요. 예를 들면 탕수육, 깐풍기 같은 것들이죠.”
조리 실습 수업이 끝나면 뒷정리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신계숙 교수는 설거지하는 학생들에게 본인이 만든 음식을 선물한다. 고생하는 학생들에게 뭔가 해주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고, 학생들도 고마워하면서 신나게 먹어서 서로가 행복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감사함 그리고 책임감
신계숙 교수를 말할 때 EBS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빼 놓을 수 없다. 2020년 시작해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 미식기행을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 시즌3 방송을 앞두고 있다. 그는 촬영을 진행하며 ‘세상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전국을 다니다보니 더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고.
“2020년 설악산 촬영 때 있었던 일이에요. 홍게딱지장과 날치알, 참기름의 조화가 찰떡궁합인 게딱지 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 남자분이 “계숙이 동생~!” 하면서 오시더라구요. 저도 붙임성 좋다는 얘기를 듣는 편인데 계속 알던 사이처럼 너무 살갑게 다가오셔서 놀랍기도 하면서 재미있었어요. 알고 보니 제가 동생도 아닌데 계속 본인을 오빠라고 칭하셨지요.(웃음) 서로의 성격이 통하는 면이 있어 금세 친해졌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작년 구례에서 만났던 할머니도 잊을 수 없다. 노점에서 채소를 파는 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남편을 떠나보낸 지 보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남편이 생전에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팬이었는데, 돌아가시기 전 경연에 나왔던 노래들을 녹음해 할머니에게 선물로 남겨 두었다고. 그 노래를 들으며 힘든 시간을 견디고 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신 교수의 마음도 먹먹해졌다. 할머니와 같이 노래하며 서로 마음을 나누었던 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았다.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촬영하며 신 교수 자신이 크게 변한 건 없다고 했다. 다만, 본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달라졌다고. 전국 방방곡곡 다니면서 즐겁게 보고 먹고 즐긴 것 밖에 없는데 시청자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환영해주니 감사할 따름이지만, 타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진다고 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중식당 ‘계향각’에 한 여자 손님이 오셨는데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고 저에게 축하를 해달라고 하시더라구요. 처음 뵙는 인연이었지만 방송을 통해 저를 보시고 ‘신계숙이라면 내게 축하의 말을 꼭 해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셨다고 하셨죠. 또 기억에 남는 손님은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는 부부였어요. 많이 두려운 상황이지만 저를 만나면 용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제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1호 창업 교수가 된 이유
신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간을 쪼개어 중식당 ‘계향각’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사립학교 교원은 겸직이 금지되어 있어요. 그런데 학생들에게는 창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요. 그런데 교수는 이런 학생들을 가르쳐야 되잖아요. 교수는 창업을 못하고 학생들은 창업하고 어떻게 보면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죠.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으면 학생들에게 생생한 현장 지식을 전달할 수가 없어요. 교수가 창업 관련해 많은 현장 지식이 있으면 당연히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하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요.”
그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학교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학교나 연구실에만 있으면 발전이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이어 더해, 창업을 준비하는 연구소를 열어 5년 동안 관계자들과 메뉴를 정비하고 검증했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 학교 규정을 바꾸었고, 배화여대 제1호 창업 교수가 되기에 이르렀다.
하고 싶은 것 그 날 하기
밝고 유쾌한 신계숙 교수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물으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특별한 시기가 있는 게 아니라 사실 매 순간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가 힘들다고, 기분이 안 좋다고 인상 쓰고 있으면 누가 날 가까이 하겠어요? 제가 항상 웃고 다니고 있으니 저 사람은 정말 즐거워서 저러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건 아닙니다. 저도 속으로는 힘들고 어렵지만 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즐겁다고 생각하며 노력하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인생은 고해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어요. 하지만 고해라고 생각하면 더 인생이 고해가 되는 것이고, 천국이라고 생각하면 천국이 되는 거죠.”
신 교수의 인생 신조는 ‘하고 싶은 것 그 날 하기’다. ‘나중’이라는 생각이나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오늘, 매 순간에 충실하고 인생을 알차게 사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관이다.
신계숙 교수는 항상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려고 노력한다. 매일 밤 다음 날 할 일을 분 단위로 미리 생각해둔다. 그는 학교에서 오전 강의 후 점심시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5km 거리에 있는 계향각으로 이동해 요리를 하고 손님들을 만난다. 그리고 오후에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돌아와 강의하고 저녁에 다시 계향각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동파육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는 끓이면서 다른 일을 짬짬이 하기도 한다고.
어린 시절부터 오토바이는 타고 싶었지만 꿈을 향해 달려오느라 바빠서 57세 때 시작했다. 남들과 다른 나이에 오토바이를 시작한 신 교수는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며, 오토바이를 타고는 싶지만 겁이 나서 못 타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시도해 보라고 말했다.
“남은 인생의 목표요? 저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이미 목표를 다 이루어서 더 이상 바라는 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