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인디 음악,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로

1990년대 대중음악계는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음악 스타일과 장르를 상품화하는 제작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이와는 다른 움직임으로 음악에 진정성을 투영하고 싶은 뮤지션과 이런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이 ‘인디 음악’이다. ‘인디’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줄임말로 거대 상업 자본과 유통 시스템으로부터의 ‘음악 독립’을 의미한다.

 

참고 도서 : <맨땅에 헤딩하리(푸른미디어)>

 

젊음의 열기를 깨운 새로움


1990년대 초, 음악의 진정성을 갈구하던 뮤지션들이 뭉쳐서 독자적으로 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인디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홍익대 앞 최초의 라이브 클럽 ‘드럭(현 DGBD)’이 생긴다. 초기의 드럭은 바-카페가 합쳐진 형태로, 그물망이 쳐진 지정된 공간에서 밴드가 연주를 했다. 드럭을 중심으로 홍대 앞 라이브 클럽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인디 음악은 새로움을 갈망하던 대중의 관심을 얻어냈고 미디어에도 자주 노출되기 시작했다. 

드럭에서 공연하던 밴드들이 주축이 된 ‘스트리트 펑크 쇼’는 당시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반응에 힘입어 1996년 여러 아티스트의 음악을 담은 첫 라이브 인디 앨범 이 제작된다. 이 앨범의 대표곡으로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가 수록되어 있으며, 타협을 거부하는 당대 젊은 세대들에게 질주 본능을 일으켰다. 이는 국내 인디 음악과 홍대 클럽 공연 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낯섦이 아닌 공감으로


그런데 90년대 대중들에게 인디 음악이 관심 받은 것은 잠시뿐이었다. 일부 뮤지션들이 대낮에 거리로 나와 선보인 슬램, 다이빙 등의 퍼포먼스는 인디 음악이 실험적이고 괴상하다는 선입견을 만들었다. 특히, 록 음악의 강렬한 이미지는 ‘하위 문화적 반항’이라는 인식을 줬다. 때문에 인디 음악은 점점 소수의 사람만 관심을 가지는 비주류 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들어서 인디 음악의 특징은 크게 바뀌었다. 1990년 인디 신(Scene)을 상징하는 단어가 ‘반항’, ‘분노’였다면 2000년대는 ‘일상’, ‘서정’으로 대표된다.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검정치마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며 인디 신의 부활을 알렸다. 아이돌 가수들이 주류 음악을 독식하게 되면서 밀려났던 라디오 친화형 음악, 어쿠스틱 음악들이 성과를 내며 대세를 이끌어갔다. 2004년 시작된 음악 프로그램 EBS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다양한 인디 뮤지션이 소개되었는데, 여기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방청객 수는 객석 수의 10배 이상이었다. 이후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과 가요제 등을 통해 버스커버스커, 악동뮤지션, 혁오 등의 스타가 탄생했다. 현재는 더 다양해진 장르와 색깔의 인디 음악이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진정성이 만든 K-인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인디 음악도 가까이에서 관객을 만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5월 ‘2022M 인디 열전’을 통해 무소속 인디 뮤지션의 무대를 지원하여 관객과 소통한다. 부산은 대학가 주변 라이브 카페를 중심으로 작지만 탄탄한 인디 신이 만들어져 있으며, 부산음악창작소에서는 인디 음악의 활성화를 위한 뮤지션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부산 출신 인디 뮤지션 ‘세이수미’는 팬데믹으로 해외 공연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 차례에 걸쳐 한국, 유럽, 북미 온라인 콘서트를 개최했다. 또 다른 부산 밴드 ‘소음발광’은 올해 초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 및 최우수 록 노래 부문에서 2관왕에 올랐다. 부산은행 유튜브 콘텐츠 ‘부산스러운 라이브’에 소개된 보수동쿨러, 해서웨이는 특유의 감성과 음색으로 마니아를 형성하는 등 다양한 지역 인디 뮤지션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우리 인디 음악은 국내를 넘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음악에 진정성을 담기 위해 출발했던 ‘K-인디’는 이제 더 큰 도약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