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권장소비자가도 없고 객관적 산출 방식도 없는 미술품의 가격을 들어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림의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글. 이지혜 아트 컬렉터,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 저자
사진 제공_ 케이옥션, 갤러리현대
‘미술사’와 ‘미학’이 그림 가격의 근간
주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는 주식 시장의 명언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기대감으로 주식을 사고, 그 기대가 현실화되는 순간이 바로 매도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주식 시장에 ‘가짜 뉴스’가 얼마나 성행하는지를, 그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뜬구름 같은 소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부동산 시장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지하철역 예정지’, ‘재개발 예정지’ 등 확정되지 않은 각종 ‘호재’는 예정된 상태로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고급 정보가 되어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미술 시장은 어떨까? 혹자는 권장소비자가도 없고 객관적 산출 방식도 없는 미술품의 가격을 들어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미술시장은 ‘미술사’와 ‘미학’이라는 그림의 가격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앞의 두 시장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미술사는 미래가 아닌 역사에 근간을 두고 그림을 평가하고, 미학은 작품의 예술성과 작가의 철학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두 학문은 인종과 지역을 막론하고 세계의 모든 학교에서 공통적으로 교육되고 있다. 쉽게 말해, 미술 시장은 이론적 체계를 갖춘 학문과 인류의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시장에 비해 훨씬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_김창열
재료는 중요, 크기는 참조만 하자
그렇다면 그림의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첫번째 요소는 바로 ‘재료’다. 우리가 갤러리에서 작품의 가격을 문의하거나, 미술품 경매 낙찰가를 살펴보면 같은 작가, 같은 크기의 작품임에도 종이 작품이냐, 캔버스 작품이냐에 따라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작품을 이루고 있는 전반적인 구성내용(이를 ‘도상’ 이라고 한다)도 비슷한데 말이다. 이는 크게 미술 시장에서 보는 재료에 대한 선호도과 재료의 내구성에서 주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계에서는 종이 작품을 캔버스에 옮겨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전의 밑 작업으로 보는 인식이 짙다. 그 시절에는 캔버스 가격이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워 매번 작품을 그릴 때마다 바로 캔버스에 작업하는 것이 작가에게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캔버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구하기도 쉬운 종이로 구도와 색감을 구현해보는 작업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종이는 재료 자체의 취약점이 많다. 종이는 직사광선에 장시간 노출되면 색이 변하고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며 벌레도 조심해야 해서 보관이 어렵다. 이러한 작품의 컨디션은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므로 구입을 고려중이라면 반드시 미리 체크해야 한다.
두 번째 요소는 ‘크기’다. 지난 3월 호에서 캔버스 크기 단위를 ‘호’라고 했는데, 이 호의 크기에 따라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을 ‘호당 가격제’라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방식을 제일 먼저 도입했던 프랑스는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철폐해버렸으나, 정작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호당 가격제가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이 가격 산정 방식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호당 가격제는 그림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을 오로지 ‘크기’로만 평가하기 때문에 그 외의 예술적인 가치 요소는 모두 배제된다. 예를 들어 한 작가가 같은 크기의 작품을 100점 그렸을 때, 그 100점이 공장에서 찍어낸 마냥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그 중에는 더욱 뛰어난 가치를 가진 ‘수작’이 있고 그 반대의 ‘태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호당 가격제로는 100점이 모두 동일한 가치를 갖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일률적인 가격 산정은 미술품을 공산품처럼 취급하게 하고, 결국 예술 평론의 필요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크기가 작품의 시장가치에 아예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큰 작품은 작은 작품에 비해 작가의 노동력과 시간, 재료비, 그리고 작품의 구성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따라서 캔버스 사이즈는 작품의 가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 정도로만 참고하도록 한다.
‘작고 호재’ 속설도 조심해야
미술계의 대표적인 속설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작가가 죽으면 그림 값이 오른다’, 이른바 ‘작고 호재’는 진짜일까? 실제 미술 시장에서 작가가 작고한 이후에 명성을 얻거나, 작품의 시장가치가 급상승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생전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김환기 작가가 현재 국내 작가 최고 경매가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림을 그릴 종이가 없어 담뱃갑 속 은지화에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 작가가 국내 미술 시장의 작가별 낙찰 총액 순위에서 156억 원으로 1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작가의 사망은 제작된 작품의 총량이 정해졌다는 의미로 여겨지는데 이는 작품의 희소성과 직결됐다. 물론 시장 가치적인 면에 있어서 희소성이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이긴 하나, 작품의 희소성이 곧 작품의 가치가 된다면 그림을 적게 그리는 작가만이 성공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보면 유통되는 작품의 수량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거래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며, 그 작가의 그림을 소구하는 시장이 형성된다. 또한 회고전을 제외하고는 작가의 위상을 계속 상승시킬 만한 요인이 없는데다 생전에 미술사적, 미학적 평가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말 그대로 ‘호재’로 인한 가격 변동이 발생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한편, ‘물방울 작가’로도 알려진 김창열 작가가 2021년 1월 작고한 이후, 미술 시장에는 그야말로 ‘김창열 광풍’이 불었다. 작가의 작품 중 상대적으로 낮은 시세에 머물러 있던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이 연일 새로운 낙찰가를 기록하는 가운데, 작가의 작품 중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1970년대 후반에 제작된 작품들의 가격은 천장을 뚫고 나갈 듯한 가파른 그래프를 그려냈다. 일각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작고 호재’의 현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화의 거장인 서세옥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작고했다는 소식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현재 김창열 작가의 작품가가 나날이 오르는 것을 단순한 ‘작고 호재’로 봐야 할지는 미지수다.
_(좌)이중섭 <돌아오지 않는 강> 종이에 유채, 18.5×14.6cm, 1956
(우)김창열
위작 논란에 주의하라
아마도 작품의 가격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위작’ 논란일 것이다. 거장의 명작으로 알고 산 작품이 하루 아침에 ‘부도수표’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 시장에 있다 보면 생각보다도 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실제로 경희대학교 최병식 교수가 집필한 <미술품 감정학>에 따르면 영국 경매 회사에서 판매되는 미술품의 15%, 인상파 작가의 작품 중 최소 10% 이상이 위작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수치를 국내에 적용해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2007년 서울옥션에서 무려 45억 7천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 작가의 작품 ‘빨래터’가 위작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이는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타이틀을 얻은 작품이었던 만큼 미술계 안팎으로도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미술품 과학 감정 전문가와 법원의 감정 결과가 엇갈리는 복잡한 난항 끝에 ‘진품으로 추정된다’는 판결을 받아 논란은 일단락되었으나, 진품이면 진품이고 위작이면 위작이지 ‘진품으로 추정된다’는 판결은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긴 하다. 어쨌든 다행히 작품의 낙찰가는 45억 원짜리 낡은 종이가 아닌 박수근 작가의 최고가 작품의 소장자가 될 수 있었다.
_위작으로 밝혀진 모네의 작품. 인상파 작가의 작품 중 최소 10% 이상은 위작이라고 한다.
작품보증서와 감정확인서를 챙기자
제작연도가 아주 오래된 작품들의 경우에는 특히 진위여부 판별의 어려움이 따르기는 한다. 여러 문제들을 지나오며 체득된 작품의 서명과 기록의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았던 예전에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작품을 그려내는 데에만 열정을 쏟았고 작품을 관리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던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위작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갤러리에서 작품을 인도 받을 때에는 ‘작품 보증서’를 받는 것을 추천한다. 작고한 작가의 경우는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을 통해 ‘감정확인서’를 받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3월호에서 미술작품의 캡션과 에디션을 확인하는 법을 익혔고, 이번 호에서 재료에 따른 가격 차이를 직접 비교하는 법과 ‘호당 가격제’와 ‘작고 호재’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배웠다.
마음 같아서는 이제 막 컬렉팅을 시작한 이 땅의 모든 ‘컬린이(컬렉터+어린이)’들이 꽃길만 걷기를 바라지만, 잊지 말자. 꽃길은 원래 비포장도로라는 것을.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림 값을 지불하는 경험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체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