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한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프란시스 베이컨은 “돈은 좋은 머슴이긴 하지만 나쁜 주인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돈 때문에 울고 웃었던 경험은 있기 마련. 이번 호에서는 돈과 관련된 단어들의 기원에 대해 알아본다.
신전의 탁자가 은행이 된 사연
은행을 영어로 뱅크(bank)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탁자’를 의미하던 고대 이탈리아어 방카(banca)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대의 ‘탁자’가 오늘날 ‘은행’이 된 것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을 얻으려면 은행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은행은 4천 년 전 바빌로니아에 있었던 신전 은행이었다고 합니다. 이곳 성직자들은 사람들로부터 담보물을 받고 대출을 해주고 그 내용을 일일이 적어 신전 창고에 소중히 보관했다고 합니다. 당시 신전 은행 안마당에는 벽에 고정해 둔 의자와 탁자가 있었어요. 신전에 온 사람들은 거기에 앉기도 하고 자신이 가지고 온 담보물을 거기에 올려놓기도 했어요. 바로 이 의자나 탁자 위에서 거래를 한 것이지요. 그래서 ‘탁자’와 ‘은행’이 연결될 것이에요.
은행 이야기가 좀 더 하자면, 이후 성직자들은 군주나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어요. 오늘날과 비슷한 민간 은행이 생겨난 것은 12세기 말이에요. 1193년 이탈리아 피콜로미니 가(家)는 토스카나 지방의 시에나(Siena)에 근대식 민간 은행을 세웠다고 해요. 시에나는 프랑스와 로마를 잇는 무역로에 있어서 은행업이 크게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_고대 바빌로니아의 낭릴 신전. 이곳은 은행으로서의 역할도 겸했다.
산골 마을 이름이 ‘달러’가 되다
_‘달러’의 어원이 된 독일의 요하임스탈 마을 기차역과 달러
‘돈’을 의미하는 머니(money)도 신과 관련이 있어요. 이 단어의 어원은 모네타(Moneta)인데, 모네타는 제우스의 아내 주노(Juno)에게 붙이는 칭호였지요. 고대 로마 사람들은 주노의 신전이나 그 근처에서 주조한 돈을 모네타라고 불렀어요. 이것이 후기 라틴어와 고대 프랑스어를 거쳐 13세기 말에 영어로 들어가 머니가 된 것이지요. 19세기에는 지폐를 포함한 모든 돈을 머니라고 불렀어요. 아무튼 이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신을 내세워 고귀한 척하면서도 자신의 부를 추구했음을 잘 알 수 있어요. 오늘날 일부 교회나 절에서 막대한 돈을 축적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네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진 돈은 달러(dollar)입니다. 흔히 달러하면 미국을 떠올리지만 이 단어 자체만 보면 독일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16세기 독일로 옮겨가야 하지요. 지금의 독일 동쪽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야히모프(Jáchimov)라는 산골 마을이 있어요. 독일은 이 마을을 점령하여 요하임스탈(Joachimsthal)이라고 불렀지요. 여기서 탈(thal)은 ‘골짜기’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1516년 이곳에서 은광이 발견되었어요. 사람들은 이 은으로 동전을 주조하였고 거기에다 마을의 이름을 본떠 요하임스탈러(Joachimsthaler)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어요. 얼마 후 사람들은 이 단어가 너무 길다고 여겼는지 그냥 탈러(thaler)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이 단어가 북독일어 달러(daler)를 거쳐 1553년 영어로 들어가 달러(dollar)가 되었어요.
돈을 갚아서 진정시키는 것이 ‘페이’
오늘날 사람들은 ‘노동이나 서비스에 대해 지불한 돈’을 ‘페이(pay)’라고 불러요. 이 단어의 어원도 참 재미있어요. 페이의 어원은 ‘진정시키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파카레(pacare)’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이나 서비스에 대해 지불한 돈과 페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요? 중세에 페이는 ‘빚을 갚음으로써 채권자를 진정시키다’라는 의미로 쓰였어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돈을 빌릴 때는 빌려주는 사람이 갑(甲)이 되지만 일단 돈을 빌려주면 돈을 빌린 사람이 갑이 되지요. 대부분의 경우 채무자는 빚을 갚지만, 만약 채무자가 빌린 돈을 이런저런 이유로 못 갚겠다고 버티면 채권자는 진정하지 못하고 애가 탑니다. 이때 채무자가 빌린 돈과 이자를 지불하면 채권자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진정하게 되지요. 아무튼 돈을 가지고 너무 애태우지 않는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Tip 돈에 대한 기타 재미있는 상식
■ 왜 우리나라 돈은 ‘원’이라고 불리나요?
‘원’은 1902~1910년, 대한제국에서 유통된 통화에 최초로 사용된 이름입니다. 동전의 모양이 둥근 데서 착안하여 둥글다는 뜻의 한자 ‘원(圓)’에서 따온 이름이지요. 1953~1962년 사이에는 ‘환’이라는 화폐 단위도 사용되었으나 1962년 6월 제3차 통화 조치 때 ‘원’이 한국 돈의 기본 단위로 정식 채택되었습니다.
■ 동전의 테두리에는 왜 홈이 파여 있나요?
옛날에 주화를 금이나 은으로 만들었을 때 가장자리를 몰래 조금씩 깎아내어 이득을 보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테두리에 톱니 모양의 홈을 넣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