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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는 숲이다

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 시민협력분과 위원 

 

한 해 동안 인쇄용지를 만드느라 잘려 나가는 나무는 700만 그루이다. 종이봉투가 비닐봉투보다 더 친환경이라는 인식이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종이가 곧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숲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종이로 둘러싸인 우리의 일상 


울진과 삼척 산불은 213시간 동안 여의도 면적의 72배를 태우고 나서야 진화되었습니다. 사라진 숲도 숲이지만 숲에 깃들어 살던 동물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산불이 나면 우리는 인명 피해와 재산상의 피해만 집계할 뿐 정작 그곳의 주인인 동물의 피해를 헤아리진 않는 것 같아 더 안타깝습니다. 

산불이 아니어도 숲은 계속 사라지고 있어요. 매 순간. 하루도 나무를 만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침에 현관문을 여니 새벽 배송된 택배가 있습니다. 종이박스를 열고 배달된 물건을 꺼냅니다. 출근길 전철역 앞에서 나눠주는 헬스클럽 전단지를 받아 쓰레기통에 넣고 화장실에 들어가 휴지를 사용하고 손을 씻고는 종이 타월로 닦습니다. 점심 식사 후엔 일회용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근처 공원에 잠시 들러 볕 좋은 햇살을 즐깁니다. 저녁엔 친구와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종이 박스 안에 종이로 감싼 샌드위치를 먹고 공연장 입구 티켓 박스에서 예약번호를 입력하고 종이 티켓을 발급받습니다. 

이처럼 종이로 만든 수많은 물건이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콘크리트 빌딩 숲에 사는 줄 알지만 사실 숲에 살고 있었던 거였어요. 수많은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을 소비하는 우리는 나무꾼인 셈입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 쓰는 나무 양은 한 해 벌목되는 나무의 42%가량이라고 해요. 

 

 

 

종이가 친환경적이라는 착각 

 

흔히 비닐봉지는 반환경적인 물건이고 종이 가방은 친환경이라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요. 플라스틱 빨대가 바다로 떠밀려가 바다거북을 비롯한 해양 동물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종이 빨대가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비닐봉지가 종이봉투의 대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1959년 스웨덴 공학자인 스텐 구스타프 툴린이 비닐봉지를 처음 궁리해 낸 사람인데요. 종이봉투를 만드느라 수많은 나무가 베어지는 걸 해결하려 비닐봉지라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해요. 가볍고 오래가는 비닐봉지를 몇 번이고 재사용한다면 종이봉투보다 훨씬 친환경일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1980년대 이후로 비닐봉지가 본격 쓰이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지만 현실은 툴린의 예상과는 완전히 어긋나버렸습니다. 가볍고 오래가는 비닐봉지가 가격마저 너무나 쌌으니 두 번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요. 1990년대부터 폐플라스틱이 해양을 오염시킨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비닐봉지의 부작용이 부각되기 시작했어요. 

비닐봉지의 대안으로 다시 종이봉투가 떠오르는 건 여러 가지로 불편합니다. 무엇보다 제지산업을 알고 나면 종이가 결코 친환경일 수 없거든요. 제지산업에는 물이 많이 쓰입니다. 종이 한 장을 만들려면 머그잔 한 잔의 물이, 책 한 권을 만들려면 욕조를 가득 채운 300리터의 물이 필요합니다. 펄프를 염색해 하얀 종이로 만들려면 표백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 많은 화학약품과 첨가제가 들어갑니다. 이런 이유로 제지산업은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에 이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1년에 약 970만 톤의 종이가 사용되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물건 포장용과 인쇄용지로 쓰였습니다.  

택배 상자는 내용물만 꺼내고 나면 곧장 쓸모가 사라지니 더욱 아까운 쓰레기입니다. 택배를 줄이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을까요? 택배 상자를 잘 모아서 우체국이나 편의점 등 택배 상자가 필요한 곳에 가져다주는 건 어떨까요? 인쇄용지도 다르지 않아요. 전체 소비량의 45%가 곧장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고 해요. 한 해 동안 인쇄용지를 만드느라 잘려 나가는 나무가 700만 그루인데 이 가운데 315만 그루는 단 한 번 사용하기 위해 베어지는 셈입니다. 한 환경단체는 식목일 전날을 ‘종이 안 쓰는 날’로 만들었어요. 나무를 아무리 심은들 종이로 사라지는 숲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이해가 가고도 남습니다. 

 

 _종이를 생산하고있는 공장모습

 

티슈 대신 손수건, 제로 상점도 이용하자  


종이 소비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지만 줄여볼 수는 있겠지요. 제 경우는 손수건을 3장 가지고 다닙니다. 하루에 3장이면 종이 타월을 쓰지 않고도 충분하더라고요. 종이컵은 내부가 폴리에틸렌으로 코팅돼 있어서 뜨거운 음료가 닿으면 내분비계교란물질이 녹아 나올 수 있으니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가능하면 머그잔이나 텀블러를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받는 영수증은 대부분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나요? 한 해 발급되는 종이 영수증이 우리나라에서만 128억 건이나 된다고 해요. 이 종이를 만들려면 나무 12만 그루를 베어야 합니다. 2022년 1월부터 정부는 마트에서 종이 영수증 대신 전자 영수증을 받으면 현금을 적립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어요. 마트, 백화점, 포장재 없이 내용물만 파는 제로 상점 등을 이용하면 회당 최고 2,000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니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종이도 아끼고 여러모로 좋을 듯합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분리배출을 제대로 해서 재활용률을 높이는 거지요. 종이라고 해도 우유 팩, 신문지, 잡지처럼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구분해서 배출해야 합니다. 탁상달력처럼 스프링이 붙어있을 경우 스프링을 제거한 뒤 배출하고 세워두기 위해 딱딱한 종이와 속지가 서로 종이 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 역시 분리해서 배출해야 합니다. 우유 팩은 양면이 코팅되어 있어서 재생 종이로 만드는 과정이 일반 종이와 다르기 때문에 일반 종이류와 섞어 배출하면 코팅 비닐이 재활용을 방해합니다. 주스 팩이나 두유 팩처럼 멸균 팩도 종이와 함께 알루미늄이 섞여 있어서 종이류에 섞어 배출하면 역시 재활용을 방해합니다. 이렇게 따로 배출해야 하는 우유 팩이나 멸균 팩은 아파트에 분리 배출할 수 있는 별도 수거함을 설치해달라고 지자체에 요구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주민센터 등에서 수거를 하지만 우리 동네나 가까운 곳에 수거함을 설치해야 효과가 더 커지니까요.

 

 _재생 종이를 사용해 패스트푸드 용기를 만든 사례



재생 종이로 1년에 27만 그루 나무를 심자 


종이를 구입할 때 재생 종이를 선택하는 것도 숲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재생 종이는 한번 사용한 종이를 40% 이상 이용해서 만든 종이입니다. 나무를 벌목해 새 종이를 만드는 것보다 한번 사용한 종이를 재활용하는 것이 물, 에너지, 화학약품을 소비하는 공정을 줄일 수 있어서 나무를 덜 베는 것 이상으로 에너지가 절약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인쇄용지 중 10%만 재생 종이로 바꾸어도 날마다 760그루의 나무를 덜 베게 된다고 해요. 1년이면 27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습니다. 재생 종이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면 재생 종이 사용량도 증가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부터 재생 종이에 관심을 기울이면 어떨까요? 종이 안 쓰는 날의 핵심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순환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온전히 숲의 일원으로 존재할 때 나무는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를 흡수하고 깨끗한 공기를 선물합니다. 더운 여름날 나무는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지요. 새들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나무입니다. 종이를 덜 쓰는 만큼 이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