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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 맑은 바람
김동식

사진 제공_ 김동식 선자장 

 

선풍기, 에어컨 바람 속에 잊힌 줄 알았던 전통 부채의 멋과 기품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사람이 있다. 66년째 줄곧 수작업으로 합죽선을 만들어온 김동식 선자장에게서 장인정신의 진정한 의미를 배워본다. 

 

혼과 풍류가 깃든 공예 작품 


대나무를 종이처럼 얇게 깎아 맞붙여서 부챗살을 만든다. 변죽에는 인두로 문양을 그려 넣거나 거북이 등껍질을 얇게 떠서 붙이거나 나전을 붙여 옻칠을 하는 등 화려한 치장을 한다. 풀을 입힌 부챗살에 미리 재단해 접어놓은 한지를 붙이고 손잡이에는 사복이라는 장식을 박으면 하나의 부채가 탄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죽선은 과거 사대부나 임금만 소장할 수 있었던 귀중품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인 김동식 씨는 전통 합죽선의 명맥을 잇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선자장(扇子匠)이다. 

“현대의 부채가 화려함에 치중했다면 합죽선은 절제된 멋이 있고 선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대나무로 만들어 손에 착 감기는 맛도 있죠, 접었다 펼칠 때 나는 소리도 남다릅니다. 소리꾼들은 그 소리를 하나의 장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소리가 좋은 합죽선을 애용합니다.”

그는 이처럼 합죽선이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선인들의 혼과 풍류가 깃든 아름다운 공예 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_황칠백접선, 74˟40cm, 50살, 황칠한지, 흑단, 낙죽
 

엎친 데 덮친 격의 고난을 뚫고 


김동식 선자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외갓집은 부유한 편이라 삼시 세 끼를 해결하기 위해 외가에 들어갔다. 외할아버지(고 라학천 선자장)는 고종황제에게 합죽선을 진상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난 선자장이었다. 그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외할아버지와 외삼촌들에게 부채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열네 살 때부터 했으니 벌써 이 일을 66년째 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부채는 생활필수품이었지만 선풍기, 에어컨 등이 보급되면서 부채도,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도 점점 사라져갔다. 게다가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형편이 더욱 어려워지자 그는 부채 만드는 일을 그만두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친구가 “왜 좋은 기술을 버리려 하느냐, 계속 하라”고 격려하며 당시로서는 큰돈을 빌려준 덕분에 전통 부채의 명맥을 계속 이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함께 부채를 만들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생활고로 그만두기도 하고 돌아가신 분도 많다. 옛날에는 1년에 800개 정도 만들던 부채를 지금은 250개 정도밖에 못 만든다. 이는 전통 합죽선 만드는 일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과 중국의 부채 기술자들도 합죽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공부를 해보겠다고 찾아왔으나 모두 ‘이건 쉽게 따라할 일이 아니다’라고 손사래 치며 돌아갔습니다.”


 대나무의 속대를 깎아내는 작업을 하고있는 김동식 선자장
 

 _ 속대를 깎아낸 부챗살을 확인중인 김동식 선자장

 

모든 것을 다 바쳐 걸어온 길 

 

조선시대에 부채를 만들던 선자청에서는 분업화가 이루어졌지만 현재 김동식 선자장은 모든 공정을 혼자서 해낸다. 합죽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초록빛이 도는 대나무 겉껍질을 잘라서 양잿물에 30~40분간 삶아 말리면 노란색이 드러난다. 이 대나무의 속대를 깎아내 0.3mm 두께로 빛이 투과될 만큼 얇게 살을 만든다. 사십선의 경우 양쪽 변죽을 제외하고 부챗살 76조각을 맞붙여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풀은 민어 부레를 끓여 만든 ‘어교’와 동물 가죽, 힘줄, 뼈를 고아 만든 ‘아교’를 섞어 사용한다.

풀로 붙인 부챗살을 단단히 묶어 일주일 정도 말린 다음, 손잡이 부분인 ‘등’으로 사용할 재료를 깎고 다듬는다. 여기에 재단한 한지를 붙이면 부채가 완성되나, 이 외에도 등과 변죽에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떤 문양을 새기는지, 한지에는 황칠을 하는지, 옻칠을 하는지, 아니면 한지 대신 비단을 붙이는지 등에 따라 다양한 공정이 더 들어간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풍류와 멋은 바로 이 합죽선을 얼마나 사치스럽게 꾸미느냐로 판가름됐습니다. 변죽 재료로 거북이 등껍질을 얇게 떠서 붙이거나 나전을 붙여서 마무리했는가 하면, 한지에 금빛의 황칠을 해서 시간이 갈수록 더 깊고 은은한 빛을 내게끔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황칠액은 작은 병 하나가 4백~5백만 원의 고가이다. 황칠을 하면 부채 한 개당 15~16만 원어치의 재료값이 더 드는 셈이라고 한다. 더구나 옛날에는 ‘등’의 재료로 요즘은 구하기도 힘든 상아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니 그 호화로움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_천연염색선, 54˟30cm, 40살, 천연염색한지, 흑단, 낙죽
 

 _쪽물염색선, 54˟30cm, 40살, 쪽물염색한지, 우족, 낙죽


모든 것을 다 바쳐 걸어온 길 

 

부채 하나 만드는 데 최소 150번의 손길이 가야 한다는 고단한 작업. 끈기와 인내심이 없으면 도저히 해낼 수 없다. 대나무 껍질은 부서지기 쉬워 기계 사용은 꿈도 못 꾸고 모든 공정을 오로지 수작업으로만 해야 한다. 기능뿐만 아니라 아름다움도 중요하다. 이렇게 온갖 정성과 혼을 다 바쳐서 만드는 합죽선이기에 그는 지난 2007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선자장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15년 국가무형문화재 첫 번째 선자장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장인은 헛된 생각을 하면 안 돼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합니다. 고집과 오기로 한번 밀어붙이면 끝을 내야 하는 것이 장인정신입니다.”  

김동식 선자장의 아들인 김대성 이수자는 5대에 걸쳐 합죽선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곁에서 일을 배워왔다. 여러 공정 중 하나라도 허투루 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어떤 때는 부채의 대중화를 고민하며 전통 부채와는 조금 다른 형태를 시도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합죽선은 언제나 본질로 돌아올 때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 본질은 절제된 멋과 아름다운 선에 있다. 

자연에서 비롯된 대나무와 종이가 만나 맑은 바람을 일으키는 전통 부채. 그 정갈한 아름다움과 청량한 기품을 지키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의 소중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_백접윤선(흰색), 50˟82cm, 50살, 한지, 화덕나무, 낙죽, 백동사북 
 

 

 _백접윤선(검정), 50˟82cm, 50살, 염색한지, 낙죽, 백동사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