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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맞바꾼 아보카도

아보카도 한 개를 재배하는 데 필요한 물은 대략 320리터로 토마토, 오렌지 등에 비해 월등히 많은 물이 필요하다. 유통과정에서 소요되는 다량의 화석연료와 전기에너지 또한 생각해볼 문제다. 아보카도 한 개로부터 탄소중립의 해법을 찾아보자.

 

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 시민협력분과 위원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 아메리카 선주민들은 1월을 이리 불렀다고 합니다. 4월은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9월은 ‘가지마다 열매 맺는 달’로 이름 붙였다고 해요. 달마다 붙여진 이름과 연결된 자연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나요? 열두 달 이름에서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았을 그들의 삶과 철학을 가늠해 봅니다. 바람에 봄이 묻어오기 시작하면 마음 설레 었을 그들의 일상도 상상해봅니다.

인류는 오래도록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왔습 니다. 최근 기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와 기후가 아주 밀접하다는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해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던 게 아니라 인류 생존에 기후의 힘이 그만큼 결정적이었다는 거지요.
 

 

이상기후로 점점 수량이 줄어드는 브라질 판타나우 습지

 

 

기후 변화라는 말은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 다. 기후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기후가 변화 하는 정도를 넘어 인류에게 위협적이라는 의미로 ‘기후 위기’라는 말이 대세가 됐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 체결한 파리협약에 따라 기후 위기의 원인인 탄소를 부지런히 줄여서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이루어야 하는 게 인류 모두의 목표이자 과제입니 다. 탄소중립이란 탄소를 배출하는 양만큼 흡수해서 총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뜻이고요. ‘탄소중립’ 이 정부 정책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까지 들어올 정도로 기후 문제는 심각한 상황입니다만 기후가 정말 위기로 느껴지나요? 기후 위기와 내 일상은 서로 연결돼 있을까요?

 

 

지구촌 곳곳이 폭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각지를 습격한 기상이변

  

작년에도 예외 없이 폭염과 폭우, 산불 그리고 가뭄등 이상기후가 지구 곳곳을 난타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는 브라질입니다. 백 년만의 가뭄으로 세계 최대 담수 습지인 판타나우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말라가는 습지 웅덩이로 물을 찾아 몰려갔던 물고기가 켜켜이 쌓인 채 떼로 죽은 모습은 처참하다는 말로도 충분치가 않았습니다. 

 

이토록 건조한 상태에서 시속 90km가 넘는 돌풍이 불자 모래 폭풍이 발생하면서 브라질 동남부 여러 도시를 덮쳤어요. 지평선 끝에서 끝까지 수백 미터 높이의 모래 폭풍이 길게는 7시간 가까이 대낮을 깜깜한 밤으로 바꿔놓았지요. 처음 겪는 당혹스러움에한 시민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예상치 못하게 변한다면 충분히 공포스러울 겁니다. 이렇듯 기후 위기란 예상치 못한 여러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2010년 UN은 깨끗한 물과 위생에 대한 접근을 인권으로 선언했어요. 물은 생존에 필수이기 때문이지 요. 이상기후로 가물어서 강바닥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강물을 과도하게 뽑아 쓰는 바람에 말라버리기도 합니다.

 

 

최근 인기가 높아진 멕시코 요리 과카몰리의 주재료는 아보카도

 

 

아보카도 나무를 베어버린 이유

 

과카몰리를 아시나요? 인터넷에 과카몰리를 검색하면 다양한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과카몰리 만드는 법부터 보관 방법까지요. 독특한 발음의 과카몰리는 멕시코 요리의 소스 가운데 하나로 아보카도가 주재 료입니다. 슈퍼푸드 목록에 오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아보카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보카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생산도 자연히 증가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벌어지는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물 문제입니다.

 

아보카도 한 개를 재배하는 데 필요한 물은 대략 320리터로 토마토 5리터, 오렌지 22리터에 비해 월등히 많은 물을 필요로 합니다. 칠레에서 가장 큰 아보카도 생산지 가운데 하나인 페토르카 지역의 강이 말라버렸고 이로 인해 지역 주민들은 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받고 있습니다. 아보카도 농장을 확장하 면서 숲이 계속 사라지니 강이 마르기도 할 테지만 더 큰 이유는 대규모 아보카도 농장이 이 지역에 있는 강에 수백 개의 파이프를 연결해서 물을 뽑아 올려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주민은 말할 것도 없고 소규모로 아보카도 농사를 짓던 이들도 물 부족에 시달리며 결국 아보카도 나무를 베어버려야 했습니다.

 

물을 구할 길이 막막해지자 정부에서 일주일에 한 번 트럭으로 물을 실어다 줍니다. 그 물로 요리와 식수, 빨래, 목욕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다 보니 늘 물 부족에 시달리고 삶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어쩌다 잠깐 단수가 되어도 불편한데 오직 물 트럭에 의지한 삶이라니요? 아보카도가 가져온 비현실적인 현실은 세계가 상품 사슬로 얽히면서 벌어진 고통입니다.

 

 

물 부족으로 인해 베어진 아보카도 나무들

 

 

우리 몸과 지구를 위한 실천, 로컬푸드

 

멕시코와 칠레 그리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미국 일부 지역과 뉴질랜드에서 주로 재배하는 아보카도가 화물선에 실려 멀게는 1만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 소비자에게 닿습니다. 대략 3주 정도 걸리는긴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아보카도를 4~8℃로 냉각 시킵니다. 바다를 횡단하는 동안 익는 걸 방지하고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지요. 항구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대략 16~20℃의 온도에서 7~14일 정도 보관하면서 인공 숙성 과정을 또 거칩니다. 아보카도를 실어나르는 화물선은 말할 것도 없고 유통과정에서 필수인 냉각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화석연료와 전기에너지를 소비하고 탄소를 배출합니다.

 

거리에 따라, 운송 수단에 따라 편차야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아보카도의 탄소발자국은 상당합니다. 아보카도는 인스타에서 스타가 된 과일입니다. 이스타 과일 때문에 누군가는 일주일에 한 번 트럭이 가져다주는 물로 요리를 할지 빨래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또 어느 지역은 최악의 가뭄이 가져온 모래 폭풍의 공포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과카몰리 대신 우리 땅에서 나는 로컬푸드로 내 건강을 챙겨보면 어떨까요? 내가 사는 반경 50km 이내에서 생산한 지역 먹거리를 먹자는 건데요.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 푸드가 대표 적인 로컬 푸드 운동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한 먹거리는 탄소발자국을 적게 발생할 뿐 아니라 어디서 누가 생산한 농산물인지 알 수 있으니 안심하고 먹을 수 있지요. 가까운 곳에서 제철에 나는 로컬푸 드야 말로 우리 몸을 살리고 지구에 부담을 덜 주는 실천이라 생각합니다.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지역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원 헬스(one health)를 이야기합니다. 생태계가 건강해야 우리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바람 속에 봄이 묻어오는 달을 기다리며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삶을 또다시 떠올려봅니다. 자연스러운 삶이야말로 탄소중립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아닐까요?